에스라 7장부터는 에스라의 새로운 2막이 시작됩니다. 1막에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 건축이 있었다면, 2막부터는 에스라를 중심으로 말씀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1막에 빗대어 2막을 말하자면 공동체의 건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의 건축을 위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세우시는데, 그가 바로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율법 학자입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율법은 나쁜 것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 자체는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율법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에스라는 율법 학자로서 그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대로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시면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에스라는 성전 건축에 이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건축하고 준비하는 일을 맡아 감당합니다.
오늘 에스라의 등장을 통해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일은 위대한 한 사람이 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에스라의 등장을 볼 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에스라입니다. 하지만 포로로부터 귀환한 그들의 역사 전체 속에서 에스라는 한 부분입니다. 에스라가 성전 건축도 하고 율법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 역사의 수많은 장면들 속에서 율법을 가르쳐 공동체를 세우는 그 장면만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전체’라는 큰 그림 안에서 자신의 역할만큼만 맡아 충성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도 딱 우리만큼의 일만 하다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어쩌면 ‘모든 것’이 아니라 ‘맡겨진 만큼’일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진 만큼’을 바라시는 이유는 그분의 목적이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그분이 우리보다 ‘일’을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분이셨다면, 그분은 ‘우리’가 아닌 탁월한 한 명을 데려다 그 사람과만 일하셨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한 사람은 얼마나 갈렸을까요. 또 하나님은 얼마나 사람을 갈아내시는 신이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보다 우리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는 이유는 그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맡겨진 일들을 감당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통해 나를 증명해 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나도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일이 우상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제한적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일일지라도 우리에게 맡겨진 그 부분만 감당할 수밖에 없고, 또 하나님께서는 딱 그만큼만 감당하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 앞에서 우리의 능력을 증명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그분을 마음껏 사랑합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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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에스라 7장은 성전 건축 이후 말씀을 통해 공동체가 세워지는 새로운 장면을 보여준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행하며 가르치며 공동체를 세우는 자신의 역할에 충성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통해 성과를 요구하기보다 우리 자신을 기뻐하시며 맡겨진 만큼의 삶을 원하신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