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묵상]
에스라 8장은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으로부터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 명단을 기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오늘 이 짧은 한 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 ‘나와 함께’라는 부분입니다. 에스라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함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신앙의 연수가 쌓일수록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예전에는 ‘혼자서’ 잘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혼자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가 아닌 함께 잘하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가고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분명 혼자 잘하는 것보다 함께 잘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직장 동료 중에 혼자서 일을 잘하는 사람과 동료 모두와 보조를 맞추며 함께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더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함께하는 것이 기독교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실 ‘함께’라는 것의 가치는 기독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는 일반적으로도 얼마든지 중요한 가치로 내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함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함께하는 것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하나님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함께’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함께함의 확장이 바로 우리에 대한 ‘구원’입니다. 즉,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함께’는 하나님을 닮아 이 땅에 존재하는 방식이고, 구원받은 자들의 삶의 방향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함께함은 단지 휴머니즘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행위이고, 우리가 받은 구원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함께함은 “부족한 너와 내가 함께할게”라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를 자신과 함께하게 하신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이 함께함은 겸손합니다. 그리고 배려합니다. 또 인내합니다. 함께하면서도 더 주장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함께함의 시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이 땅에 죄인의 몸을 입고 찾아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이 ‘함께’의 의미를 기억하고 서로와 서로가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이때의 함께는 우월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함께를 확장하신 그분의 겸손과 그분의 사랑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신과 함께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겸손,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이 우리가 지향하는 ‘함께’입니다. 그렇게 우리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읍시다. 사랑합니다.
–
세줄요약
에스라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함께’는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구원에서 비롯된 삶의 방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와 함께하셨기에 우리는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와 이웃과 함께 살아갑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당신이 치르신 희생을 기억합니다. 더욱 주님과 함께 우리의 삶을 살며 교회 공동체와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