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Unsplash의Spencer Davis]
[컴그아침묵상] 5월 16일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2장 11-16절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빌려와 ‘복음’을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게바 곧 베드로입니다. 바울은 베드로와 안디옥에서 있었던 일을 통해 자신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전한 복음이 잘못된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안디옥은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 도시 중, 대표가 되는 도시입니다. 굉장히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도 안디옥에 들러 예수님을 믿게 된 이방인들과 함께 어울려 교제를 했습니다. 당시에 깊은 교제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만큼 그들과 굉장히 깊고 친밀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식사할 때 음식과 관련된 법과 정결과 관련된 법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러한 법이 없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이미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던 경험이 있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 뿐만 아니라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까지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찾아왔습니다.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울은 그들을 만난 후, 할례자들(12절) 곧 유대인임에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핍박을 하는 유대인들이 두려워 더이상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게 됩니다.
아마 이를 두고 안디옥 교회에서 말들이 돌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전에는 우리와 편하게 식사를 잘했는데, 이제 더이상 우리와 식사를 하지 않네?”
“들어보니까, 베드로가 유대인으로서 율법이 없는 우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게 옳지 않다고 했나봐”
“뭐야, 그럼 그동안 우리랑 같이 먹고 교제했던 것은 다 거짓이었던 거야?”
“우리가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라고 이렇게 선을 긋는거야?”
이러한 베드로의 선택과 태도는 안디옥에 있던 다른 유대인들과 심지어 바울과 함께 이방인 선교에 앞장 섰던 바나바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에 베드로를 중심으로 유대인들이 더이상 유대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거리끼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식사할 때, 유대인들로서 지켜야할 법이 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안디옥에 머문 유대인들의 마음에 들어온 생각들입니다.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연합’의 식탁 교제를 더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대단히 노를 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을 받을 짓을 해서, 내가 그의 얼굴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베드로! 너희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말하는건데,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려는거냐? 제 정신이냐?”(갈 2:15_필자 의역)
바울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도 너를 자신의 법으로 대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너는 네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로, 네가 가진 그 율법으로 이방인 형제를 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는 구절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갈 2:16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받으신 사건은 자신이 가지신 법을 우리가 충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법을 충족해서 받은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은 우리가 조건을 충족해서 필요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편에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충족하신 구원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장벽을 없애시고 자신이 우리를 향해 먼저 내미신 그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믿음을 고백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감사’이며, ‘은혜’입니다.
때문에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볼 때도, 우리가 가진 조건이 ‘의’가 되거나 ‘자랑’이 되어 이웃과 함께할지 또는 배제할지 결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먼저 은혜의 손을 내미신 것과 같이 그에게도 동일하게 내미신 그 손을 보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그 기준과 조건이 법이 되어 베드로와 같이 선을 긋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떠한 구원인지, 그분이 무너뜨리신 그 선을 다시금 기억하며 이 하루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고 연합하게 하신 하나님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법과 조건이 되어 사는 삶이 아닌 우리는 해체되고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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