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남유다의 왕 여호야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야긴은 사실상 남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이후에 맛다니야가 왕으로 세워지지만, 그는 바벨론이 시드기야로 개명해 세운 왕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긴에 대한 평가는 아버지와 다를 게 없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은 “그때에 바벨론이 남유다를 포위했다”라고 말합니다(10절). 이 일로 남유다는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여호야김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며 나라는 철저히 무너집니다.
남유다가 포로로 끌려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을 것이고,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남유다 멸망의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라가 멸망하는 그 순간에도 “여호야긴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사안과 사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 이유를 분석하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찾는 것이죠. 물론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결국 우리 안에 남는 것은 교만이거나 분노입니다. 일이 잘 되었을 때는 그것이 내 덕이라 생각하며 교만하고, 일이 잘 안 되었을 때는 자신이나 타인을 탓하며 분노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다루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자신과의 관계를 주목하시며,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남유다가 망한 것은 단순히 약해서도, 외교적으로 실패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사안과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어떤 일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들 속에서도 우리와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가십니다.
저는 우리 컴그 모두가, 사안과 사건을 통해 상처와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이 남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안과 사건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일로 인한 모든 좋지 못한 결과를 예수님께서 대신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 모든 결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더욱 하나님을 바랄 수 있는 확신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삶이 모든 사안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누리며, 그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세 줄 요약
남유다의 멸망은 외교나 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였다.
우리의 모든 사안과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의 관계를 다루신다.
예수님께서 모든 결과를 대신 지셨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와의 관계를 목적하심에 다행입니다. 그 관계를 시간 속에 더 깊고 풍성하게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