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30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요시야의 마지막입니다. 요시야의 마지막 장면은 앞선 문맥과 연결해서 볼 때 조금은 황당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요시야는 선왕입니다. 우상 숭배에 빠진 남유다를 하나님 앞에 세운 왕입니다. 본문 앞에서는 요시야가 행한 세 가지 일을 기록하는데, 먼저 율법책을 읽게 한 일, 다음으로 성전의 모든 우상을 제거한 일, 마지막으로 유월절을 회복한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일 모두 요시야가 남유다 왕으로서 아주 잘한 일들입니다. 앞선 왕들 중 율법책을 읽고 유월절을 회복한 왕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요시야의 업적은 대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단한 업적의 결과는 “그러므로 요시야는 승승장구했다”가 어울립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요시야가 애굽 왕과 맞서 싸우다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죽었더라.”
오늘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최선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는 분명 훌륭한 왕이었지만, 그의 훌륭함과 최선이 구원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의 최선은 결국 죽음이라는 한계 안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은 복음, 곧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의 최선을 넘어 하나님의 최선으로 이루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최선’을 답으로 여깁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선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이라는 한계입니다. 최선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최선을 보이셨습니다. 그 최선은 바로 그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최선을 대신해 자신의 완전한 최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의 최선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최선이 만들어내는 결과보다 하나님의 최선이 내 삶에 만들어내는 결과가 더 큽니다. 하나님의 최선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답게 살게 합니다. 이 아름다운 삶을 함께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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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요시야의 선한 행위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음 앞에 멈췄다.
인간의 최선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최선에서 온다.
하나님의 최선,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생명과 삶의 의미를 누릴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최선이 되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