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28일
[본문말씀]
역대하 24장 15-22절
- 15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 16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 17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 18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 19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 20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 21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 22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여호야다와 요아스가 등장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은혜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요아스가 갓 태어났을 때 여호야다는 목숨을 걸고 아달랴로부터 요아스를 숨겨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요아스는 여호야다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이었습니다.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가르침이 아닌, 다른 가르침을 따라 이방신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방신들만 섬긴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책망한 스가랴 선지자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죽인 장면은 요아스가 얼마나 악한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스가랴는 요아스를 목숨 걸고 지킨 여호야다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요아스에 대해 “여호야다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스가랴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요아스의 이러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자신을 목숨 걸고 지켜 준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아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요아스처럼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마음이 변해 전날의 은인이 오늘의 원수가 되는 일을 우리는 종종 경험합니다.
가족에게서 그럴 수 있습니다. 분명 사랑받고 은혜를 누렸는데, 어느 날 무엇 때문인지 관계가 틀어져 원수가 됩니다. 친구와도 그럴 수 있고, 직장 동료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친했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원수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마음 역시 요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은혜를 잊고 미움에 사로잡히는 일은 사람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를 노래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은혜를 고백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님께 서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약합니다. 그리고 악합니다. 이 약하고 악한 마음은 언제든지 ‘나’에게 불편한 대상을 미워하고, 그 대상에게 분노합니다. 물론 요아스처럼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 동기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움이 곧 살인의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이는 우리 모두를 요아스와 같은 살인자로 만들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속 요아스의 악함이 곧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요아스처럼 악합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우리를 위해 죽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왜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우리가 그 정도로 악하고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죽으셔야 해결될 만큼, 우리는 악하고 약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악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더 나아가 그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악함을 보는 동시에, 그 악함을 덮고도 남는 그분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요아스의 모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봅니다. 그분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실 뿐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거기에 그분 사랑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악함을 볼 때마다, 우리의 약함을 볼 때마다 주저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분 안에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분 품 안에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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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요아스는 받은 은혜를 잊고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함으로 자신의 악함을 드러냈다.
요아스의 모습은 은혜를 쉽게 잊는 우리의 연약하고 악한 마음을 비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악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악함을 덮고도 남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란 사실이 날마다 감사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마주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