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5월 23일
[본문말씀]
레위기 10장 1-2절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묵상]
성경을 읽을 때, “엥? 이게 뭐지?”라는 장면들이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른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아들들입니다. 제사장으로 임직을 하고, 그들이 드린 처음 제사에서 그들은 죽습니다. “엥? 이게 뭐지?”라고 할만 하지요.
사실, 이 대목이 낯선 이유는 제가 아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은혜의 하나님이시면 좀 용서해 주시고 다음부터는 잘하라고 말해주실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을 만나 당혹스럽던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혜’라는 말이 사실은 우리의 생각과 너무 다른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란 사실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은혜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정말인가?’라는 당혹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하나님을 만났고 이를 ‘은혜’라 말하는 것이지요.
은혜는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은혜의 하나님이 이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은혜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는, 은혜를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의 범주 안에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말씀 드리지만, 은혜란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분이 바로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가 처음 제사임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것은 그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그들의 불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은 절대로 ‘그들의 불’에 의해 통제되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맞습니다. 그 은혜의 하나님이란 말은 우리가 “은혜의 하나님 아니었어요?”라는 말로 통제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다른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다르셨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생각과 다른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저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으로 인해, 저는 도리어 더 큰 안정감을 누립니다. 저에게는 그분의 그분 되심이 곧 은혜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당신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의 바다 안에서 당신을 마음껏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