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7월 23일
[본문말씀]
열왕기상 8장 27절
- 27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묵상]
세줄요약
-
솔로몬은 성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주목했습니다.
-
사람의 위대함을 주목하면 우월감과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을 완성한 후, 하나님에 대한 솔로몬의 인식이 어떠한지 말해줍니다. 성전은 크고 위대한 건물입니다. 역대 왕 중에 이런 일을 한 왕은 없습니다.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다윗도 하지 못한 일을 솔로몬이 했고, 외형적으로도 위대했기 때문에 이 일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오늘 본문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의 하늘도 담아내지 못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감히 이 성전에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하겠는가?”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모두가 성전의 크고 위대함을 주목할 때, 그리고 솔로몬이 행한 그 일을 주목하고 있을 때, 솔로몬은 여전히 그보다 더 하나님의 위대함을 주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가 한 일들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소셜미디어는 사람의 위대함을 극대화하는 도구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람들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노래합니다. 동시에 그렇지 못한 자기 자신을 보며 실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위대함을 주목할 때 우리 안에 생기는 두 가지 태도는 ‘우월감’과 ‘열등감’입니다. 사람을 특정한 기준으로 위대하다 말하는 순간, 그 기준에 합당하지 못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위대해지지 않게 됩니다. 이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 기준으로 자신을 보게 되는데, 이는 곧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연결됩니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보이는 모습은 다른 것 같지만, 특정한 기준을 놓고 위대함과 위대하지 않음에 의한 결과라 할 때, 그 뿌리는 같습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가 자신이 한 일을 가지고 자신을 보았다면 그는 성전이라는 큰 일을 통해 우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이 성전을 보라!”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자신이 크고 놀라운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하나님보다 더 큰 일이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두가 그가 한 위대한 일을 주목할 때 도리어 하나님을 주목했습니다. “이 성전이 아무리 크고 위대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위대함을 볼 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시대는 과도하게 우리의 위대함을 주목하는 시대입니다. 그 사람의 외모, 학벌, 능력 등. 그 사람이 가진 위대함을 노래하고 이를 주목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불안, 근심, 염려, 걱정 등과 같은 질병입니다. 저는 우리 시대가 분명 과거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들어 사는 이유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위대함을 주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함이 아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행하신 그 위대하신 일을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자기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에게 만족될 때 우리를 받아주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위대해질 때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아무런 위대함도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설령 우리가 위대함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분은 우리가 이루어 놓은 위대함보다도 우리 자신을 더 크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 증거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주목합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그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아름다우심을 주목합니다. 당신의 위대하심에 더 큰 만족을 둡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