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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Christian Holzinger]

같은 성령, 다른 해석

[컴그아침묵상] 2월 16일 

[본문말씀]

사도행전 21장 10-13절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묵상]

오늘 본문은 비슷한 장면을 두 번 반복합니다. 먼저는 바울이 방문 두로에서 제자들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 말은 가볍게 들을 수만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냥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한 바울의 그 어떠한 반응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두로를 떠난 바울은 예루살렘과 가장 가까운 항구인 가이사랴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를 통해 앞선 예언과 똑같은 말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21:11)

이 말을 들은 바울의 일행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 것”을 권유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놓고보면,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굉장히 무모해 보입니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똑같은 예언을 들었고 더 나아가 이 예언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한 것이었기 때문에 결코 가볍지 않은 말이니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반응은 놀랍게도 이와 반대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 봅시다. 

“여러분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21:13)

두로의 제자들과 아가보로부터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란 예언은 사실 바울도 이미 알고 있던 내용입니다. 바울도 성령께서 이에 대해 이미 말씀해주셨다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밀레도로 불러 만난 에베소 장로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20:22,23)

여기까지는 두로의 제자들과 아가보의 예언의 내용과 같습니다. 바울도 이미 이에 대한 내용들을 성령으로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듣고 난 뒤, 이 예언에 대한 바울의 해석은 동료들의 해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바울의 동료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갈 경우, 그가 당하게 될 핍박과 환난을 면하는 것으로 이 일들을 해석했지만, 바울은 도리어 이 일들을 감내하고서라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해야만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굉장히 흡사하기도 합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나”(마 16:21)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을 올라가실 때 그분이 당하실 고난과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하셨습니다. 제자 중 베드로는 바울의 동료들과 같이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예수님을 혼냈습니다(*항변하여, 혼내다라는 의미). 제자들의 상식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는 것은 고난을 받는 것과 동일했기에 화를 내서라도 말려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곧이어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다”(마 16:24)

아마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겠다고 할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자신도 그분과 굉장히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모를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성령을 통해 고난을 피하는 것 그 이상으로, 성령을 통해 예수를 따르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 충만을 구할 때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무엇입니까? 주변으로부터 우습게 여겨지지 않는 ‘힘’일까요. 또는 모두를 설득시킬만한 ‘능력’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통해 우리가 얻는 유익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설령 그것이 고난과 환난과 핍박일지라도 말이죠. 오늘 하루도 그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을 구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길 기도합니다. 성령으로 가득해지고 싶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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