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벽기도모임 때 시편을 나누는데, 시편을 보면, '어찌하여', '언제까지'와 같은 탄식들이 나온다. 하나님께 따지는 것이다. 그런데, 꼭 따지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급(?)마무리 한다. 상황이 변해서인가? 아닌 것 같다.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시인만 변한 것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런 시인의 불친절한 마무리에 좀 당황스럽다. 중간에 뭐 이유라도 있어야지. 예를 들어, '하나님께 구했더니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변했다! 짠!' 얼마나 좋은 스토리인가.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본 시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런데 변한 건 시인의 고백뿐이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 상황도 변할 수 있지만, 나도 변할 수 있겠구나."
상황이 변하기를 바라지만, 결국에 변해야 하는 건 내 자신일 수 있겠구나.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좋아한다. 거기, 모든 것에 항상 나는 다른 사람 또는 상황을 넣었지 내 자신을 넣으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복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시인의 불친절한 고백이 이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내가 변화되면 모든 것은 변화된 것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말이다.
#목회단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