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19장 23-29
23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28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본문 묵상]
욥은 친구들의 반복된 정답에 지쳤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말한 정답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확신 안에 욥을 가두었습니다. 이에 욥은 "그 정답이 틀리지 않았다면, 과연 나만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이 옳으냐?"라고 묻습니다. 그 정답으로부터 친구들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의 형편을 헤아려 하나님 앞에 세워 줄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도, 친구들의 힘으로도, 심지어 가족들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그 한 사람을 '대속자'라고 말하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고엘'이라는 단어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고엘은 가장이 죽고 가정이 무너졌을 때, 그 집안을 대신 일으켜 세우는 친족을 의미합니다. 가장 중심의 사회에서 가장이 죽었다는 것은 집안의 큰 위기였습니다. 사실상 가문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때 가장 가까운 친족 중 한 사람이 죽은 가장을 대신해 가장이 되어 줄 수 있었는데, 그가 바로 고엘입니다. 고엘은 그 가정이 감당해야 할 손해를 자신의 것으로 떠안고 값을 치러, 그 가정이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회복시키는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욥은 지금 그 고엘을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너진 삶 속으로 찾아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한 사람을 간절히 기다린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 대속자를 통해 자신이 죽은 후에도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욥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자신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며, 가족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을 위한 대속자 한 분뿐입니다.
우리는 이 대속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고엘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엘이시며, 나의 고엘이 되십니다. 우리의 형편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죄의 짐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셨고, 사망 아래 있는 우리를 생명으로 건져내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손해를 자신이 떠안으시고, 우리의 모든 빚을 갚으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신 분이 바로 나의 고엘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편에 서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우리의 편이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편이 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신실하셔서 우리를 향한 사랑과 돌보심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고, 영원히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우리의 편이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넉넉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욥은 자신도 친구들도 해결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자신을 대신해 줄 대속자, 고엘을 갈망했습니다.
2. 고엘은 무너진 가정을 대신 책임지고 회복시키는 친족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참된 고엘이 되셨습니다.
3. 우리의 편이 되신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