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20장 27-29절
27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요 땅이 그를 대항하여 일어날 것인즉
28그의 가산이 떠나가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끌려가리라
29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
[본문 묵상]
욥기 20장은 소발이 욥에게 하는 두 번째 말입니다. 욥기 20장은 아주 무섭습니다. 소발이 악인에 대한 결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발이 이렇게 악인의 결말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욥이 자신의 의도대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소발은 욥에게 겁을 줘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무시무시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소발이 겁을 줘서 말을 듣게 하는 방식은 우리가 '진리'나 '정답'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두 아이가 있는데, 아이들의 특징은 (저도 그랬지만) 한 번 말해서는 절대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치를 하자"라고 말하면 열 번을 말해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럴 때 제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겁을 주는 것'입니다. "너 그러다 충치 생긴다. 그러면 치과에 가서 드릴로 이를 파내야 한다. 드릴이 이를 뚫을 때 얼마나 아픈지 아냐?"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이들이 겨우 말을 듣고 양치를 합니다.
사실 이렇게 겁과 공포로 사람에게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은 율법이 우리에게 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힘은 '사망'에 있다고 말합니다. "너 내가 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것이 율법의 방식입니다. 이렇게 소발과 우리는 율법의 방식을 따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의 의견을 피력하곤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도 이렇게 오해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공포로 우리를 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일들을 '형벌'로만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 우여곡절의 목적은 우리를 향한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십자가 사건은 "너 내 말 안 들으면 혼난다. 죽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우리에게 하는 일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내 말을 듣지 않는 너를 위해 내가 죽겠다"를 십자가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복음이라 부릅니다. 내가 치르지 않은 생명의 값을 대신 받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리를 전달하는 방식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전하는 방식도 복음이어야 합니다. "너 내가 하는 말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보자"라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상대를 사랑으로 품으며 진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소발은 오늘 하나님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욥을 설득하려 합니다. 그 설득에는 하나님보다 공포가 있습니다. 복음보다 율법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태도에 율법이 아닌 복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겁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사랑으로 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소발은 욥을 회개시키기 위해 악인의 결말을 강조하며 공포로 설득하려 했다.
2. 우리도 종종 겁과 두려움으로 진리와 정답을 전달하려 하지만, 그것은 율법의 방식에 가깝다.
3.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공포가 아닌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셨으며, 우리 역시 복음의 방식으로 진리를 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