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묵상]
오늘 본문은 남유다 왕 아사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사랴는 16세에 왕이 되어 52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3절과 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아사랴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5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살았음에도 아사랴는 완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치신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무하신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잘한 것은 칭찬하시고, 못한 것은 덮어주셔야지, 이렇게 치신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냐는 것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 본문은 그 의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맞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우리의 잘한 것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못함이 우리의 잘함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치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치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무작정 벌을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못함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형편에서 건져내실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오실 구원자’를 고대하며 하나님을 신뢰했고, 신약의 사람들과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미 ‘오신 구원자’를 신뢰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를 위한 ‘오신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우리의 형편을 대신 지신 분이십니다.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더 큰 우리 삶의 결과를 그분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거하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합니다. 우리의 못함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못함을 가져가셨고, 우리의 잘함보다 더 아름다운 그분의 잘함을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커먼그라운드교회 여러분,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우리의 못남 때문에 하나님께서 치시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맞아야 할 모든 매를 예수님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불이익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주눅 들거나 자책에 갇히지 마시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담대함의 이유가 되십니다. 오늘 하루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부어지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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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아사랴는 정직히 행했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나병에 걸리는 심판을 받았다.
우리의 잘함보다 못함이 더 커서, 결국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못함을 대신 지셨으므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 당신임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