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39장 13-18절
13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본문 묵상]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시는 말씀은 39장에서도 이어집니다. 39장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중 오늘 본문은 '타조'에 대해서 말합니다. 두 가지 내용이 나오는데, 먼저는 타조의 지혜롭지 못한 모습이고 다음으로는 타조의 아름다움입니다.
타조는 알을 낳고 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합니다. 소중히 보호해야 할 알을 아무렇게 놓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타조가 달릴 때를 보면 말보다 빠르며 말에 올라탄 자보다 더 빠르다고 말합니다. 타조가 알을 대하는 것과 달리, 달릴 때는 그 어떤 동물들보다 더 빠르고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타조만 볼 때는 나쁜 점과 좋은 점만 보입니다. 알을 낳고 돌보는 모습을 보면 "타조는 왜 저럴까?" 싶습니다. 하지만 타조가 달릴 때를 보면 "타조는 대단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타조를 볼 게 아니라 타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한계는 타조만 볼 때 나쁜 점과 좋은 점을 가지고 타조에 대해 말하지만, 타조가 아니라 타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면 나쁜 점이든 좋은 점이든 타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시야 안에서는 모든 상황에 대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이분법으로 들어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좋은 것과 나쁜 것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타조를 창조하셨듯이,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타조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타조의 어떠함보다 더 옳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분의 창조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좋은 것과 나쁜 것보다 하나님이 더 크십니다. 우리 삶은 이분법보다 큰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좋으냐, 나쁘냐로 살피기 전에 자신의 창조 안에 우리 삶을 경영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창조는 '선'입니다. 완벽합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그 창조 안에 우리의 인생과 삶이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은 좋은 것 나쁜 것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창조의 하나님보다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창조의 하나님, 그 손 안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창조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이 하루를 감당하는 컴그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욥기 39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 가운데 타조를 통해 전개됩니다.
2. 본문은 타조가 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지혜롭지 못한 모습과, 달릴 때 말보다 빠르고 아름다운 모습을 함께 말합니다.
3. 타조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머무르지 말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더 크심을 신뢰하며 하루를 감당하라고 권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