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36장 15,16절
15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본문 묵상]
욥기 36장은 엘리후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36장에서 엘리후가 하는 말의 요지는 '고난은 너를 더 잘되게 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한 고난은 우리를 절대로 집어삼킬 수 없습니다. 때문에 고난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맞는 말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맞는 말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이 맞는 말에 맞아 아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 전반에 걸친 친구들의 말은 사실 모두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대부분 정답에 가까운 말입니다. 본문 속 엘리후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을 욥에게 적용함에 있어서는 좀 더 배려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욥의 고난은 그 말조차도 버거울 수밖에 없는 무거운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지나는 지체를 향해,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고난이 그에게 어떠한 유익이 되는지가 아니라 그 고난을 지나는 지체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한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욥의 현실을 헤아리지 못한 정답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아무리 맞는 말일지라도 욥에게 전혀 와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해석하기 전에 우리는 고난을 겪는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난에 대한 말보다 고난을 겪는 사람의 슬픔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이 고난을 지나면 너희는 더 성숙해질 거야. 그러므로 지금의 고난은 너에게 좋은 것이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난을 설명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고난에 참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바로 그 증거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고난 속으로 찾아와 우리를 헤아리시는 그리스도가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고난을 헤아리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난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 아파하는 그 마음을, 외로워하는 그 고독함을, 그 깊은 슬픔을, 우리와 같이 되신 그리스도는 아시며 헤아리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고난의 이유가 무엇인지 또는 그 고난의 유익을 묵상하기 전에 먼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슬픔과 눈물을 아시므로 그분께 나아오는 자 모두 고난 중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겪는 고난 중의 빛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도 우리의 고난을 넉넉히 마주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맞는 말도 고난당하는 이에게는 아플 수 있습니다.
2. 고난을 해석하기보다 지체의 마음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고난을 아시고 위로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