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26장 14절14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본문 묵상]
욥기 26장은 빌닷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욥의 말입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이 참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반어법입니다. 친구들이 일방적으로 쏟아 놓는 그 말이 과연 지혜로운 말인지를 되묻는 것입니다. 욥은 이어서 자신이 친구들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아는 것을 말하며 "내가 이렇게 아는 것을 말해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한 부분일 뿐"이라며 친구들이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하는 말의 교만함을 폭로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안다며 나에게 하는 말이 얼마나 교만한 말들이냐?"라고 말입니다.
오늘 욥의 말을 통해 우리는 겸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겸손이란, 나보다 큰 존재 앞에 세워지는 경험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이 크시다고 말은 하는데, 그 크신 하나님 앞에 세워진 것 같지가 않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하나님이 크시다고 말하면서 자신들도 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은 편이 되어 욥을 정죄합니다. 그러한 친구들을 향해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정말 크신 하나님 앞에 세워졌다면, 그분과 함께 설 게 아니라 나와 함께 그분 앞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겸손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나보다 큰 존재 앞에 선 사람만이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가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겸손한 '척'입니다. 겸손은 나보다 큰 존재 앞에 세워져,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겸손해집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수동태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는 겸손당해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 앞에 세워진 경험이 있습니까? 또는 지금 그 크신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 과연 누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크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은 자신의 크심을 세상이 말하는 크기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얼마나 크신지 우리를 위해 작아지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작아지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크심을 '내가 크다'로 증명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얼마나 '작아지실 수 있는지'를 통해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만날 때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그분의 크심이 작아지심으로 나타났다는 사실 앞에 어느 누가 나의 크기를 통해 나를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앞에서 겸손당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당하는 게 기분 좋은 건, 그분 앞에서 겪게 되는 '겸손'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크심 앞에 함께 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크심 앞에 우리가 함께 세워질 때 당하는 겸손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 작아지신 그분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크기로 우리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며, 우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받고 있는 사랑 안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욥은 친구들의 교만함을 드러냅니다.
2. 겸손은 큰 존재 앞에 세워지는 경험입니다.
3.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참된 겸손을 배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