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13장 2,3절
2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본문 묵상]
욥기 13장은 12장에 이어 욥의 적극적인 항변이 이어집니다. 욥은 친구들이 말하는 확실한 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합니다. 자신도 친구들만큼이나 잘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은 확실한 답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임을 말하며, 하나님 앞에 “따져 묻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따져 묻는다는 건, 친구들 입장에서는 불경건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사람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현실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오늘 욥이 하나님께 따져 묻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질문할 수도, 의심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허용하십니다. 우리는 좋은 신앙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질문도 의심도 존재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정해진 답 안에 우리 자신을 맞춥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들도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보다 더 넓습니다. 질문과 의심까지도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는 과정 중에 ‘사춘기’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답이라 확신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하는 시기입니다. 이를 통해 답이라 확신했던 것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의심하고 질문하며 흔들렸던 모든 시간들까지 성장의 자양분이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의심과 질문 없이 자라나는 성도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의심과 질문을 허용하시면서 우리의 신앙 세계를 넓히실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합니다. 물론 그때는 고통스럽습니다. 명쾌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둘러싸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사춘기의 시간을 돌아볼 만큼 훌쩍 자라난 나 자신을 보게 되는 것처럼, 이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며 우리는 자라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질문과 의심을 통해 우리는 자라납니다. 질문과 의심이 없는 신앙만이 좋은 신앙은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과 의심이 허용된 관계 안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이 관계가 그 무엇보다 확실하고 안전한 관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세 줄 요약-
1. 욥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질문하고 따져 묻습니다.
2. 신앙은 질문과 의심까지도 품을 수 있는 더 넓은 관계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를 성장시키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