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12장 1-6절
1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3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4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5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6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본문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욥기 12장은 친구들에 대한 답이 아닌, 욥 스스로 자신의 현실 속에서 갖게 된 의문들을 말하는 장면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정답’을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정답이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입니다. 욥은 이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고,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만 그들이 정답이라 말하는 것에 대해 “과연 그 정답의 의미를 알고 말하는 것이냐?”라고 되묻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향해 ‘정답의 의미를 알고 말하는 것인지’를 되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욥과 친구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는 그 정답과는 반대되는 상황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6절에서 “강도의 장막이 형통하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냐?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라고 묻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악인의 형통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말하는 정답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정답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눈을 가렸습니다. 자신들의 현실을 지운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들의 삶은 정답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욥이 처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욥이 정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로 인해, 기존에 알고 인정하던 정답의 의미가 전부가 아니라는 자리까지 서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자리는 욥이 서 있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 현실을 부정할 때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정답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은 그 자리까지 정직하게 가볼 때, 비로소 그 정답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정답을 위해 현실에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욥은 현실을 마주함으로써 자신에게 허락된 정답의 더 깊은 의미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시고, 우리의 현실에 압도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선물로 받은 신앙은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목에 핏대를 세워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 모른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초대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과 같이 말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가 당면한 고난은 걸림돌이 아니라 더 깊은 데로의 초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고난이라면,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 시인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편 119:71)”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난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인 이유는,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직하게 마주한 현실, 그 자리에도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신앙은 현실을 외면하며 정답만 붙드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현실까지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입니다.
2. 욥은 정답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그 정답의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3. 고난은 신앙의 걸림돌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