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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그아침묵상

욥, 하나님의 확실함으로 상대를 누르지 말고 살려라

by 권목님 · 2026.5.15.
[일러스트 출처 Unsplash의 Pragati Choudhari]

[본문 말씀]
욥기 11장 1-6절
1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2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3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4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5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6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본문 묵상]
욥기 11장은 욥의 세 번째 친구 소발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소발은 두 친구들에 대한 욥의 대답에 다시 답합니다. 그 답은 이렇습니다. “그래서, 너는 하나님이 틀렸다고 말하는 거냐? 지금 누가 누구에게 틀렸다고 말하느냐? 하나님은 틀리실 수 없는 분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아와 회복되어라.”

소발의 말에 과연 누가 토를 달 수 있을까요. 소발의 말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하나님을 틀린 분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확실하신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얼마든지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는 상대를 향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는, 하나님의 확실함으로 상대의 불확실함을 누르는 것입니다. “너 그렇게 살다가 지옥 간다”, “예수님 안 믿는 네 인생 어디 잘되나 보자”와 같은 말들입니다. 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확실함이 상대를 향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곰곰이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한 분에게 고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다투었는데, 그 사람이 “예수님 믿는 사람과 싸워서 잘된 사람 없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웃고 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확실함을 상대의 틀림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데 익숙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괴롭히기라도 하면, “저 사람은 지옥 갈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의 확실함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확실함은 살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찬란하게 드러내신 장면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확실함으로 사람을 정죄하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확실하심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자를 향해 정죄와 판단과 배제가 아니라, 그 확실하심을 피난처 삼아 함께 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소발의 말을 통해 배제가 아닌 포용으로, 평가와 판단이 아닌 격려와 인정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틀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틀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틀린 자의 자리에 서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히 옳은 자로 사랑받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하나님의 확실함을 말하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틀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확실함은 사람을 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3. 십자가는 정죄가 아니라 포용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확실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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