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묵상]
세줄요약
르호보암은 힘으로 다스리려 했고, 그 선택은 이스라엘의 분열을 낳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힘으로 누르지 않고, 예수님처럼 힘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힘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진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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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 있는 나라 그리고 힘 없는 나라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솔로몬 이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새로운 왕으로 세워집니다. 이때 르호보암 앞에 여로보암이란 사람이 찾아오는데, 이는 솔로몬 때의 고역을 좀 줄여달라 요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이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먼저는 원로들과 만납니다. 원로들은 르호보암에게 조언하기를 “그들의 의견대로 하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신임 각료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구합니다. 그들의 의견은 원로들과는 달랐습니다. 본때를 보여줘야 다시는 까불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내 새끼손가락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가 너희를 더욱 엄하게 다스릴 것”이라 말하라 조언합니다. 르호보암은 누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을까요? 신임 각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여 그는 힘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 선택은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10지파)과 남유다(2지파)로 갈라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제공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는 힘의 질서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다스리시는지에 대한 샘플입니다. 이 나라가 힘을 가지고 다스렸을 때 갈라졌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그와 같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절대로 자신의 힘을 가지고 상대를 눌러 자신을 증명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 나라의 일반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비단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각 개인의 삶에서도 이 힘의 질서를 따라 삶을 산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우리들에게 “너의 힘을 보이라”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너가 누구인지 힘을 가지고 증명해 보라”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증명해내지 못하고 누군가로부터 당하게 되면, “내가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이 있으면 저 사람이 나를 얕잡아 보지 못할 텐데”라며 억울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힘을 가지고 자신을 증명하거나, 상대를 누르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힘을 가지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구체적인 장면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봅니다. 가장 힘이 있으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장 약해지는 길을 선택하신 게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힘을 가지고 상대를 누르지 않으셨습니다. 그 힘을 가지고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군가에게 당하더라도, 자신이 힘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힘을 가지고서 오히려 약해지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힘을 가져야만 한다는 질서로부터 건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힘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 인생의 힘으로 증명하려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힘없이 달리신 그 십자가만을 우리의 힘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가 우리의 자리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힘이 되신 당신을 의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