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6월 21일
[본문말씀]
레위기 22장 20,21절
20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21 만일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 하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묵상]
레위기 22장 17-25절은 하나님께서 온전한 제물을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있는 우리야 하나님께서 온전한 제물을 기뻐하신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신앙이 없는 이들이 보았을 때-또는 신앙이 있을지라도- 이는 하나님께서 ‘제물을 밝히시는 분’이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온전한 제물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탐하시는 분이시기에 온전한 제물을 드리라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하나님께서 온전한 제물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의 전부가 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제물이 아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기뻐하시는 게 아니라, 그 제물보다 자신을 더 기쁘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에서 드려질 소, 양, 숫염소는 어차피 죽여서 드려집니다. 때문에 드리는 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죽을 거, 흠이 있는 것을 드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실용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 깊은 곳에는 제물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물이 아까운 것이지요. 만약 하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에게 제물은 기꺼이 드릴 수 있는 대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줄 때,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계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꺼이 상대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그 주는 대상보다더 상대가 소중할 때입니다. 만약 내가 주려는 그것이 상대보다 귀하면 절대 줄 수 없는 게 우리의 마음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 당신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우리의 예배 가운데 ‘헌금’이 그러한 신앙고백의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가난해집니다. 헌금을 드림으로써 말입니다. 그렇게 날마다 자발적으로 가난해지기로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 세상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질보다 더 하나님 당신이 나에게 소중한 분”이라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렇게 담대하게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색함으로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기꺼이 자기 자신을 ‘먼저’,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보다 더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날마다 이 신앙의 고백 위에 섭시다.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시며, 나의 영원한 기업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드림이 인색함이 아닌 자원함인 이유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가진 다른 어떤 것도 당신보다 더 귀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