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3월 12일
[본문말씀]
룻기 1장 19,20절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묵상]
자업자득. 자신이 행한 대로 결과가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보통은 좋지 못한 결과가 있을 때, 그 원인을 그가 행한 좋지 못한 일에 둘 때 ‘자업자득’이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오미는 한 인생에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한 번에 겹쳐 일어납니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녀의 집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나오미는 두 명의 며느리에게 자신은 더이상 줄 게 없으니 각자의 고향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나오미 역시도 자신이 떠나온 고향을 향해 갑니다. 자신과 함께하겠다고 맹세한 며느리 룻과 함께 말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과부가 돼 고향을 돌아가는 나오미의 발걸음은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에 이주해 살았던 결과가 자신이 기대한 풍성함이 아닌, 비천함 곧 과부가 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나오미’라 부르는 고향 사람들을 향해 “나는 나오미가 아니라 마라다”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기쁨’이란 뜻이고, 마라란 ‘괴로움’이란 뜻입니다. 즉, “나를 기쁨이라 부르지 마세요. 나는 괴로움입니다”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을 마라라 불러달라는 나오미의 말 안에는 자책이 담겨 있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자업자득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 땅에 이주해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남편과 아들들의 죽음이니, 뭐라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변에서도 그녀가 당한 비극을 보고 “그러니까, 누가 약속의 땅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래?”라고 되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원인 삼아 자책하는 일은 비단 나오미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도 자업자득이란 말에 쉽게 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자업자득이란 말을 부수고 우리 삶에 자신의 선하심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나오미의 삶이 자업자득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룻기의 주제는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자신의 백성들의 삶을 자업자득, 또는 자신의 업보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룻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칩니다.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으니라”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오벳은 나오미의 집안의 대를 이어 며느리 룻이 낳은 아들입니다. 그 아들이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우리가 잘알고 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계보를 따라 예수님이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십니다. 자업자득으로 내버려질 수 있는 삶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심을 나타내심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업자득이란 말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삶의 원인으로서 살지 않습니다. 이를 행위 구원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원인으로 삼아 삽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은혜로 받은 구원입니다.
자업자득이란 말이 더이상 우리의 삶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더이상 우리의 삶이 우리가 씨앗이 되어 살지 않고, 예수님이 우리 삶에 심긴 씨앗이 되어 열매까지 맺으시는 삶이 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그분은 포도나무며 우리는 그 나무의 가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이상 우리 인생에 자업자득이란 말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자업자득이 아닌, 하나님의 선하심만이 남는 삶입니다. 내 손으로 심어 내 손으로 거둔 일이 아닌, 예수님의 손으로 심으신 그 일이 우리의 열매가 되어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여전히 비추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선하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우리답게 살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선하심이 우리 삶의 담대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