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격파하고 들어가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
2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왕관을 빼앗아 중량을 달아보니 금 한 달란트라 그들의 왕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
3그 가운데 백성을 끌어내어 톱과 쇠도끼와 돌써래로 일하게 하니라 다윗이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이 모든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상 20장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은 사무엘하 12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는 사무엘하에 기록된 내용일 것입니다. 바로 다윗이 밧세바와 처음 만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역대상과 사무엘하는 서로 전혀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기록했을까. 이에 대해 두 가지로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각 성경의 기록된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서는 “우리가 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에 대한 답으로서 기록된 성경입니다. 때문에 그 답은 “하나님이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라 너희들의 못남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역대기의 기록 목적은 이와는 다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과연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지금도 동일하신가?”라고 묻고, “너희들의 역사를 봐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변함없이 너희를 인도해 내셨는지.”가 이에 대한 답입니다.
다음으로 각 성경 간의 차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의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만이 남을 것임을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볼 때 다윗의 실수와 실패, 좌절과 낙심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 아래 있습니다. 다윗의 못남이 하나님의 선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 모든 부족함은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는 재료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동일합니다. 우리 인생의 종국에 남게 될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선’입니다. 오늘 우리가 후회하는 그 일이, 낙심하게 하는 그 일이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선을 향해 가는 과정이자, 선을 더욱 드러내는 재료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를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모든 후회와 낙심과 좌절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우리의 삶의 결국에 하나님의 사랑만이 남을 것이라 확실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기록될 영광스러운 한 문장은 우리의 못남이 아니라, 우리의 좌절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그분의 ‘선’입니다. 그분 자신이 우리 인생의 결론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이 믿음 안에서 우리의 삶을 우리답게 살아낼 수 있는 은혜가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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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사무엘서와 역대기는 기록 목적이 달라 같은 사건도 다르게 제시한다.
다윗의 실패조차도 결국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는 재료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삶의 결론에는 하나님의 선과 사랑만이 남는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 무엇도 이 안전함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