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9월 16일
[본문말씀]
열왕기하 10장 28,29절
- 28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 29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후가 북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을 처리하는 장면입니다. 예후는 자신이 이전 왕보다 더 바알을 섬기겠다며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신전에 불러 모읍니다. 전국 각지에 있던 모든 자들이 신전으로 찾아왔습니다. 본문은 신전에 바알을 섬기는 자들로 가득했다고 말합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예복을 입힌 후에 그들이 바알을 섬기게 하고, 예후는 준비해둔 사람들을 통해 바알을 섬기는 자들 모두를 처리합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예후의 행동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바알을 섬기면 안 되는 북이스라엘에 옳은 길을 걸을 수 있게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예후가 바알을 없애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금송아지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에게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역사는 늘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 이전의 못남을 대체합니다. 그럴 때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그 못남을 대체하는 사람을 ‘완전한 의로움’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권은 이전 정권의 못난 점을 말하며 자신의 잘남을 드러냅니다. 물론 그 잘남이 이전의 못남보다 개선되고 대안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한 의’는 아닙니다. 마치 예후가 바알을 없앴지만 여전히 금송아지를 섬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리하면, 오늘 본문은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새로움은 절대로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사람의 대안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대안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대안이 되시기 위해 행하신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 스스로는 대안이 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친히 행하셨습니다. 그 일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서로의 못남에 몰입하지 않고 우리의 대안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것이 정당이 내세우는 대안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 편에 서신, ‘완전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모두의 대안이 되시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바알을 섬기는 네가 문제야”라는 말에만 매몰되지 말고, 나의 삶 속에도 여전히 ‘금송아지’가 있음을 인정하며, 함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상대의 한계만 보는 사람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나의 한계를 함께 보는 사람은 따뜻합니다. 나의 한계를 따뜻하게 끌어안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상대의 한계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따뜻합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한계가 비난이 아닌 포용으로 드러나는 사랑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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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예후는 바알을 없앴지만 여전히 금송아지를 섬겼듯, 사람의 새로움은 완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사람의 대안은 오직 하나님,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포용하며, 우리 모두의 대안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를 끌어안으신 당신이 우리의 노래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