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그라운드교회
글쓰기
프로필 수정
사진을 탭해서 변경
닉네임
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Jeremy Bishop]

우리의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컴그아침묵상] 2월 21일 

[본문말씀]

사사기 16장 23-28절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묵상]

사사기 16장은 삼손의 마지막 이야기를 말해줍니다. 삼손의 마지막은 많이 초라합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눈이 뽑혀 블레셋에 사로잡혀 가 재주를 부리는 치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삼손의 삶은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매우 닮아있습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하나님 앞에 구별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도 제사장 나라로 하나님 앞에 구별된 나라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그들이 한 일은 삼손과 마찬가지로 이방신을 음란하게 섬긴 것이었습니다. 삼손이 눈이 뽑혀 블레셋에게 끌려간 것처럼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눈이 뽑혀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처럼 삼손의 삶과 이스라엘의 역사는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의 포로로 끌려갔다는 것은 삼손에게만 치욕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치욕이기도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신이 우리의 손에 삼손을 넘겨 주었다! 우리 신 최고다!(23절)” 당시 나라 간의 전쟁은 곧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의 포로로 끌려간 것은 블레셋의 신이 하나님을 포로로 끌고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손을 통해 영광을 받으셔야 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도 아닌 삼손을 통해 수치와 치욕을 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삼손의 결말은 굉장히 초라해 보입니다.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사랑한 여인도 없고, 그의 가족들도 없으며, 동족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을 조롱하는 블레셋 사람들과 자신의 곁에 선 소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손의 마지막 외침을 통해 그와 여전히 함께하시는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소서!”

삼손의 곁에 아군은 없습니다. 그의 주변으로는 오직 적들 뿐입니다. 어쩌면 삼손의 자업자득입니다. 자신의 행실로 일어난 당연한 결과입니다. 누군가를 삼손을 향해 “그러니 누가 그렇게 살래?”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삼손의 그 자리에 여전히 함께하시는 분이 계시니, 바로 그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입으신 수치와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삼손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게 전부인데, 그럼에도 그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증거이자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는 굉장히 치욕스러운 자리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율법에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자신을 내어주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는 너의 어떠한 연약함에도 너를 떠나지 않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가 나에게 입힌 그 어떠한 수치와 부끄러움에도 너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다.”를 확증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우리의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용기를 내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모두가 우리를 떠나는 우리의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그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게 우리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담대함이 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이란 사실이 그저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로 191, 상가 3호  커먼그라운드교회 (우편번호 06372) |  cgc@cgc.or.kr
©COPYRIGHTS 2022 COMMON GROUND PRESBYTERIAN CHURCH. ALL RIGHTS RESERVED.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로 191, 상가 3호  커먼그라운드교회 (우편번호 06372) |  cgc@cgc.or.kr
©COPYRIGHTS 2022 COMMON GROUND PRESBYTERIAN CHURCH. ALL RIGHTS RESERVED.

마음을 나눠요
교인 번호를 입력하면 댓글·좋아요에 참여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