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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mauro mora]

아둘람 공동체

[컴그아침묵상] 5월 1일 

[본문말씀]

사무엘상 22장 1,2절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묵상]

다윗과 아둘람 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의 입지가 굉장히 좁아졌음을 말해줍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내에서도 머물 수 없고, 이스라엘 밖에서도 머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아둘람 굴입니다. 아둘람 굴은 거주지가 아닙니다. 거주지가 아닌 곳에 거주한다는 것은 다윗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다윗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수는 400명입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들이 알고 모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은 아둘람 굴에 모여든 사람들에 대해 ‘환난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라고 설명합니다. 아둘람 굴에 모인 사람들이 겪은 일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더 이상 이스라엘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정감의 본질, 포용
우리는 오늘 아둘람 굴에 모여든 사람들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좋은 환경보다 자신의 약점이 포용받을 수 있는 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은 아둘람 굴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환경일지라도 내 약점이 포용받지 못할 때, 우리는 그곳에서 안정감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약점에도 불구하고 포용받는 관계 안에서입니다.

피로사회와 교회의 역할, 포용
우리 사회를 어떤 교수는 ‘피로사회’라고 부릅니다. 우리 사회는 분명 환경적으로 이전보다 좋아졌지만, 쉼이 없고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고 말하는 제목입니다. 우리는 아둘람 굴일지라도, 내 자신이 포용받을 수 있는 그 관계 안에서 비로소 쉼과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증언입니다.

포용을 누리는 공동체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면에서 저는 우리 교회가 아둘람 굴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각자의 약점이 포용받는 곳입니다. 또 포용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시작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포용하신 사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을 속이기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섰을 때, 포용받을 수 있는 이유보다 포용받을 수 없는 이유가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를 포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보다 도리어 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를 더 크게 보십니다. 그게 바로 ‘포용’입니다.

우리 교회가 피로사회라 불리는 이 사회의 한복판에서 쉼과 안정감을 누리는 ‘포용’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따뜻한 공동체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따뜻함을 누리고 실천하며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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