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묵상]
진정한 공감이란 그 사람의 입장과 상황에 섰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물론 그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아도 공감을 할 수 있지만, 같은 입장과 상황을 겪은 뒤에 하게되는 공감은 분명 겪기 전보다 더욱 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기 예수님은 율법의 정결예식을 따라 성전에 올라갑니다. 사실 예수님에게 정결예식은 필요없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율법 아래에서 율법을 따라 사셨음을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수님께서 철저히 우리와 같은 조건에 들어와 우리의 형편을 공감하시는 하나님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율법 아래 나셨다”라는 것은 곧 우리가 가진 모든 조건을 그분도 동일하게 사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처지에 들어와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실 수 있으신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저 멀리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직접 우리와 같은 자리에 서셨으며, 우리를 삶을 사셨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그 어떠한 연약함도 그분 앞에 공감받지 못할 연약함은 없습니다. 아파본 경험을 한 사람이 그 사람의 아픔을 알듯이,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아파보셨기 때문에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살 때, 예수님으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그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맛보길 바랍니다. 더욱 바라기는 그 경험이 우리 주변의 이웃을 더욱 공감하고 그와 함께하는 길을 걷게 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컴그가 서로의 삶을 깊이 공감해주며 또 용납할 수 있는 너른 품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계셔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약속하는 소망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