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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Cédric VT]

섬김은 상대 중심일 때 성립되는 말이다

[컴그아침묵상] 11월 12일 

[본문말씀]

역대상 13장 7-10절

  • 7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 8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 9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 10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장면입니다. 언약궤를 옮기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했던 사무엘과 달리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하나님 곁에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따랐습니다. 하여 그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도 언약궤를 부적처럼 ‘사용’하고자 가져갔으나 그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후에 언약궤 스스로 이스라엘에 돌아와 거한 곳이 기럇여아림이고, 오늘 본문은 다윗이 그곳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가져오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언약궤를 옮기고자 한 다윗과 이스라엘의 마음은 좋은 마음이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기 때문에 언약궤를 옮긴다는 건 하나님이 우리들의 중심이란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사람 중 ‘웃사’라는 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레에 실은 언약궤가 떨어지려 할 때 이를 붙잡았고, 그때 웃사는 죽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언약궤를 옮기려는 것은 좋은 마음이었을 것이고, 심지어 웃사가 언약궤를 잡은 것은 떨어지려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었는데, 그에게 일어난 결과가 너무 과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하진 않지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이란, 좋은 게 좋은 거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좋은 게 좋은 거야’라고 할 때, 그 ‘좋은 것’의 기준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앞에 좋은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중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편의와 효율이 최우선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모르게 자리한 태도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나 중심적인 신앙”입니다. 내가 편하고, 내 생각에 맞으면 그게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도 편하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해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들이 언약궤를 옮기려 한 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옮기기 위한 방법과 효율 등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옳지 못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게 더 효율적이고, 이게 더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묻는 것입니다.
신앙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이 섬김이 참된 섬김이 되기 위해서는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섬긴다 하면서도 중심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섬기면 섬길수록 모든 섬김을 나를 위한 일로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섬김을 받으시기 전에, 우리를 섬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섬김은 우리처럼 이기적인 섬김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섬김은 철저히 이타적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척’이 아니라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인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철저히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를 섬기라”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를 먼저 섬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섬김은 바로 그분의 섬김 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섬김이 우리 중심으로 끝나지 않기 원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섬김이 철저히 우리를 향한 섬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도 우리 중심의 섬김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섬김, 하나님 중심의 삶의 길을 걸읍시다. 그분의 섬김이 우리의 삶에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도 우리의 삶에 진짜 섬김을 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섬기신 그분 중심의 삶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섬기는 컴그가 됩시다. 사랑합니다.

세 줄 요약

  1.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려 한 일은 좋은 뜻이었으나, 인간 중심의 방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2. 신앙은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일 때 참된 섬김이 된다.

  3. 예수님의 섬김처럼 이타적인 하나님 중심의 섬김이 우리의 삶을 진짜 섬김으로 만든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섬김으로 제가 오늘을 삽니다. 제가 사는 건 당신의 섬김 위에 저의 삶도 섬김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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