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1월 26일
[본문말씀]
여호수아 2장 24절
24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묵상]
여호수아 2장은 가나안에서의 첫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2명의 정탐꾼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정탐꾼들은 여리고에 들어가자마자 위기를 겪는데, 그때 자신들을 숨겨준 한 여인으로 인해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라합입니다.
라합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며 그 땅을 정탐하러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녀가 그들을 숨겨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을 내가 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의 일을 우리가 들었다”
“너희의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다”
여리고 사람인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고백은 피상적인 고백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줄만큼 진지한 고백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이스라엘에게 주셨음을 인정하며 자신과 자신의 집안 사람들의 목숨을 보장해 줄 것을 약속해 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삶을 해석할 때의 기준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라합이 삶을 해석할 때 기준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알았고, 그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했습니다. 그 결과 두 정탐꾼을 숨겨주었으며, 이후에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목숨을 약속으로 보장해 달라 말하기까지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 때 그냥 살지 않습니다. 반드시 해석에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을 하며 삽니다. 그 판단과 해석은 우리의 말과 태도를 결정하는데, 우리의 말과 태도를 볼 때 그 해석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삶을 볼 때 해석을 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경험입니까? 아니면 소문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그 선택입니까?
우리가 우리 삶을 볼 때, 우리의 해석이 되는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라합과 같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그 하나님은 라합이 아는 하나님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구원보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우리의 죄를 대신해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없으신 그 아들은 우리와 같이 되심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라합보다 더 우리를 위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유일한 해석의 기준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신 그 하나님만이 우리 삶을 해석하는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그 해석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담대하며, 용기를 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 삶을 보는 눈이며, 기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통해 오늘 하루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