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작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부르는 장면입니다. 그 결과는 매우 비참합니다. 42명이나 되는 작은 아이들이 곰에게 찢겨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이 사건은 엘리사의 외모를 비하한 작은 아이들이 비참하게 죽은 이야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단순히 엘리사의 외모를 비하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먼저, 본문에 나오는 ‘작은 아이’는 꼬마 아이들을 뜻하지 않습니다. 대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작은’이란 말은 미성숙하고 철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엘리사 앞에 나타난 ‘작은 아이들’은 혈기 왕성하지만 미숙한 청년들이었습니다. 또 ‘대머리’라는 말은 단순히 엘리사의 외모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당시 머리카락이 상징하던 권위와 아름다움을 무시하며 “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라는 조롱이었습니다. 이어서 “올라가라”라는 말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사건을 빗대어 “너도 네 스승처럼 사라져라” 혹은 “너도 올라갈 수 있냐? 없지 않느냐”라는 비아냥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들은 엘리사를 조롱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조롱한 것입니다. 엘리사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몰아가면서, 결국 하나님까지도 무가치한 하나님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필연적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엘리사에게 까불다가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의 피할 수 없는 결말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말씀은 곧 북이스라엘을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엘리사를 조롱한 미숙한 청년들이 바로 너희와 같다. 그리고 그 끝은 비참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만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서 2장 3절에서 우리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즉, 엘리사를 조롱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까불면 이렇게 된다” 혹은 “나를 무시하면 이렇게 된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결말이 우리의 결말이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비참한 심판을 대신 받으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긍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향해 함께 아파하고 이해하는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은혜와 긍휼이 되십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분이 필요합니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서로를 향해 비난과 판단이 아니라 긍휼과 은혜를 보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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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본문의 ‘작은 아이들’은 미성숙한 청년들로, 엘리사와 하나님을 조롱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무시한 북이스라엘의 결말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우리의 결말도 같았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긍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