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4월 5일
[본문말씀]
출애굽기 22장 1-4절
1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2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3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4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묵상]
출애굽기 22장 1-15절은 ‘배상’ 또는 ‘보상’과 관련된 법이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배상과 관련해 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데에는 이 배상이 이웃과의 관계와 관련된 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웃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고, 그 관계에는 의도하든지 의도하지 않든지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배상이란, 우리가 이웃과 관계를 맺고 사는 이상 반드시 필요한 법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과 밀접한 배상법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는 ‘죄’의 심각성이고, 다음으로는 ‘사랑’입니다.
배상이란, 내가 이웃에게 입힌 손해에 대해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값을 치르며 깨닫는 것이 있는데, 바로 죄의 무게입니다. 그 죄의 무게만큼 배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값을 치르며 더 생각하게 되는 게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한 무게입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에 대한 무게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께 지은 죄의 무게는 어떠하겠는가?”라고 말입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는 내가 배상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 지은 죄를 내가 무엇으로 배상할 수 있을까?”라는 게, 이 배상법을 통해 배우게 되는 죄의 심각성입니다.
다음으로는 이 배상법을 통해 배우는 것은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한 배상을 하나님 자신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법’이 없는 값없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분은 말로만 ‘사랑’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배상법을 충족하신 매우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에 대해 배상을 해야함에도, 배상할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해 자신이 그 죄의 무게를 지신 것이 십자가이며 이를 사랑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배상법을 통해 우리 죄의 심각성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에 대한 값을 기꺼이 배상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경험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날마나 겸손해지며, 그분의 사랑을 받은 확신과 기쁨을 누립니다.
오늘 하루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담대히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사랑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당신이 우리 삶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값을 치르고 사신 당신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