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23일
[본문말씀]
창세기 39장 1-3절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묵상]
창세기 39장은 요셉의 인생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을 말해 줍니다. 먼저는 애굽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끌려 가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요셉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우리 삶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삶을 장악하기 위해 ‘힘’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나이가 들어 ‘돈’이 없으면 초라하다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노년에 삶을 장악하지 못할 때의 아쉬움이겠지요?
요셉은 자신의 삶을 장악하지 못한 채 밀려난 인생을 살았습니다. 팔리는 것도 모자라, 죄인의 신분으로 갇히기 까지. 요셉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셉이 이렇게 밀려난 인생을 사는 장면을 보며, ‘형통’이라 말합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이죠! (2,3,23절)
요셉이 밀려났다 하더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것은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의 기준은 하나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그렇지 않은가 말이죠.
이는 우리의 삶에 ‘힘’을 가져 ‘내 삶을 장악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깨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설령 너의 삶이 밀려난 것 같을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는지의 여부가 형통을 말하는 기준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요셉 이후에 오늘을 사는 우리는 더 담대히 이 형통을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완전한 ‘형통’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분 안에서 누리는 형통은, 그분이 우리가 살아야 할 밀려난 인생의 결과를 그분이 대신 사셨기 때문에 누리는 형통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밀려나신 인생을 사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형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은 형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인생은 밀려난 자리에서도 형통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오늘 하루도 힘을 내며, 형통한 자로 우리 인생을 넉넉히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만이 우리 인생의 형통의 기준이 됩니다. 형통한 인생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설령 밀려난 그 자리에서도 우리는 형통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아름답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