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19일
[본문말씀]
창세기 38장 1-11절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묵상]
오늘 본문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에 동침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아서는 이 둘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책망하는 것 같지만, 사실 오늘 본문이 더 크게 관심을 쏟는 것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본문이 부적절한 관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데요. 당시에 그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것은 ‘명예’와 ‘사회적 신분’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집안의 여인에게 대를 잇게 할 남편이 없을 경우(사망), 가장 가까운 친족이 대를 이어야 할 책임을 이행했어야 했습니다. 이는 그 집안의 명예와 그 여인의 사회적 신분 보장을 위한 책임이자 의무였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유다가 다말에게 둘째 아들을 준 이후에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둘 다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말은 달랐습니다. 다말은 유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집안의 명예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 용기를 내는데, 그게 우리가 읽은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후에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다말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모두가 다말을 향해 손가락질 할 때, 다말의 행위가 단순히 도덕적인 비난 정도로 해석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된 유다는 그녀를 향해 비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어난 결과 하나만 가지고 가타부타 말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부도덕한 일에 눈 감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라 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일어난 결과에 대한 너무 쉽게 판단하기 전에, 그 일들에 대해 주의깊게 생각할 것과 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 것을 말해 줍니다.
다말의 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용기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 집안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말입니다. 너무 쉽게 그녀의 행동을 나무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이 단순하지 않은 삶들 사이로, 서로를 더욱 이해하며 서로의 삶을 깊이 헤아려 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그렇게 대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삶을 아시나이다. 우리 삶의 그 깊은 이야기들을 아시는 하늘 아버지가 계셔 위로를 받습니다. 오직 당신의 위로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