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2월 17일
[본문말씀]
역대하 4장 1절
- 1솔로몬이 또 놋으로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십 규빗이며
[묵상]
역대하 4장은 다양한 성전의 기구들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중 놋제단을 살펴보려 합니다. 놋제단은 성전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성전의 기구입니다. 이 성전 기구를 통해 우리는 성전의 목적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놋제단에서는 희생의 번제물을 태워 올리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장면을 상상해 보면, 희생 제물을 들고 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각자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사연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일상 속에서 겪은 불안과 걱정, 염려와 근심, 분노와 갈등 등 여러 문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일전에 유목민 사역을 하는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지역에는 아직도 번제의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짐승을 태우는 일은 20~30분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2~3시간에 걸쳐서야 비로소 완전히 태워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놋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태워 올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오르는 제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더욱 선명하게 보았을 것이고, 그 긴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성전에 나아오기까지 품고 왔던 다양한 문제들은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하나님만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문제가 진짜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문제로 인해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놋제단 앞에서 일어난 이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삶 속에서 다양한 문제와 사연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제 앞에서 그 문제가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는 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선명하게 볼 때, 그 문제들은 비로소 우리 인생에서 비본질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그 모든 문제를 위해 태워지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염려를 위해, 나의 걱정을 위해, 나의 불안과 근심을 위해, 나의 분노를 위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이 더 이상 내 인생의 본질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문제가 별것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여전히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 한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밝히 볼 때, 우리는 문제들 사이로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오롯이 남을 때,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인지, 하나님의 온전한 기쁨이 되는 존재인지를 깊이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의 다양한 사연들 사이로 그리스도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놋제단에서 태워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희생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랑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 앞에서 우리 주님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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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놋제단은 성전의 시작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곧 희생과 만남의 목적을 보여준다.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리스도를 밝히 볼 때 문제는 본질이 아니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