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2월 21일
[본문말씀]
5장 22,23절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묵상]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을 때. 우리의 노력이 결과를 안겨다 주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합니다. 시험을 위해 한 해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과연 누가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우리의 노력에 따른 결과를 받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일반은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노력한만큼 하나님께로부터 결과를 받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의 삶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시험과 같은 경우,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지만 동시에 열심히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의 노력과 달리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도 실망하게 됩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가지 않겠다는 모세를 어떻게서든 설득해 이집트 왕 앞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전하라 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이집트 왕 앞에 선 모세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이는 굉장히 큰 노력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일이었기 때문에 결과에 있어서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꽝’이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실망을 토로합니다. 이는 정확히 우리의 모습이지요.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당혹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우리의 노력에 비례하는 결과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가 모세의 투정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이집트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의 해방 과정은 모세의 노력에 의한 결과도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의 노력 때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노력을 보시고 “그 노력이 가상하니 나도 그 노력에 보답하겠다”가 아니라, 애초에 그들이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건져내실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을 대하실 때, 한번도 그들이 가진 노력이나 실력에 비례하여 결과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노력이 부족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실력이 부족할지라도 그들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노력에 비례한 결과를 주겠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과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말합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볼모 삼아 하나님께 결과를 요구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곧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노력에 따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 그 삶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이상 저의 노력을 볼모 삼아 당신께 내가 바라는 결과를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저와의 관계를 저의 노력이 아닌, 당신의 아들 안에서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저의 결과는 당신이십니다. 저는 당신 안에서 결과로부터 자유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하나님만이 저의 모든 것입니다. 제 노력이 아닌 당신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가 제 인생의 결과입니다. 그 결과 안에서 마음 껏 당신을 사랑하며 힘을 내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