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4월 10일
[본문말씀]
사무엘상 14장 6, 52절
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52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묵상]
블레셋과의 전쟁 속 두 사람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 이스라엘을 위협한 주변 국가는 블레셋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역시 블레셋과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이 전쟁 이야기 속에는 두 인물이 중심에 등장합니다. 전반부에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후반부에는 사울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두 사람이 각각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차이점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울타리 삼은 요나단
먼저 요나단을 살펴보면, 그는 블레셋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요나단에게 이 전쟁의 주체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에 자신도 기꺼이 수고하며 참여한 것입니다. 오늘 제목에 비추어 말하자면, 요나단은 하나님을 울타리 삼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의 고백,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말은, 단순한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틀이었습니다.
자신을 울타리로 삼은 사울
반면 사울은 자신이 스스로 울타리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힘 있는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사람들의 능력을 의지하여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든 것입니다. 사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신뢰하지 못한 채, 인간적인 울타리 안에서 안전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삶을 해석하는 두 태도
이처럼 요나단과 사울은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삶의 주체로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수고를 더 크게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수고가 크다면, 우리가 할 일은 작지 않나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떠올려 보십시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울타리가 되어 줄 때, 자녀는 그 안에서 안정을 얻고, 오히려 더 담대하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헌신이 자녀의 책임감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가 자기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울타리의 위험
하지만 만약 부모가 울타리가 되어 주지 않는다면, 자녀는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울의 삶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삶의 울타리로 여기지 않았기에, 자신이 만들어 낸 울타리 안에서 살았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 용감한 자들을 모아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울타리는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의 최선과 노력은 결국 ‘나의 의’로 흐르거나, ‘나는 왜 이렇게 혼자 싸워야 하나’ 하는 자기 연민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이 울타리가 되실 때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울타리가 되십니다. 그분은 우리 삶에 자신의 최선을 다하십니다. 우리의 가정도, 자녀도, 교회도 그분이 울타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과 모험을 기꺼이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이 울타리가 되는 삶은 담대합니다. 동시에 겸손합니다. 왜냐하면 그 삶의 중심에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울타리로 삼아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최선이, 하나님의 역사와 맞닿아 더욱 아름답게 열매 맺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십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안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