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람 왕의 군대 장관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람의 군대장 나아만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나병에 걸린 그를 하나님께서 고치신 것입니다. 이는 열왕기하 4장과 연결되는데,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난 기적이 이방 땅 아람에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는 차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은혜’라는 말 자체는 이미 차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차별이 존재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은혜를 ‘믿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나아만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치셨습니다. 이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은혜란 믿음을 조건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아무 조건도 없는 대상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예측과 상상보다 훨씬 크시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누가 나아만에게까지 하나님의 손이 미칠 것이라 예상했겠습니까? 실제로 북이스라엘 왕은 나아만을 고쳐주라는 말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화를 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에게까지 미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예측과 상상보다 더 크십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신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우리의 수준 안에 가두려는 모든 시도로부터 한걸음 물러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를 대신해 죽으실 것을 알았겠습니까? 과연 누가 우리를 위해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상상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예측과 상상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오늘을 살아갈 때,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해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곧 우리의 용기이십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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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하나님의 은혜는 조건과 차별이 없는 은혜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예측과 상상보다 더 크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는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얻는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만이 우리의 자랑이오니,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