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3월 3일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묵상]
고린도교회는 당시에나 지금에나 ‘이런 교회가 다있어?’라고 놀랄만한 모든 일들이 모여있는 교회였습니다. 물론, 부정적으로 놀라는 일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장은 그중 가장 무난(?)하다 할 수 있는 분열입니다. 교회의 분열과 분쟁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의 표현을 따르자면, “나는 바울파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에 질세라 “나는 바울보다 말이 뛰어난 아볼로야!”, “말보다는 열정 아니겠어? 난 베드로야!”, “야 나는 너희들이 말하는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그리스도파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일부 몇 사람들의 분위기가 아니라 고린도교회 전체의 분위였습니다. 교회는 각 지도자를 따라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다 분열되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교회와 교회가 서로의 우월함을 자랑하며 경쟁을 추구한다면, 이는 분명 고린도교회의 분열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우월함을 주목하면 필연적인 결과가 바로 분열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우월하다 여기는 순간 반드시 상대는 상대적으로 열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보다 내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은 그 이면에 굉장히 큰 내용들이 숨어있습니다. 이는 우상숭배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국 우월함이란 나 자신을 섬기는 일이며, 상대 역시도 자신을 섬기라 강요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우월함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갈라내며 내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분열된 고린도교회를 향해, 17절에서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복음이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 전한 것은 ‘자신의 우월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말과 같이 교회는 한 특정인의 탁월함이나, 우월함으로 인해 시작된 공동체가 아닙니다. 복음으로 시작된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어쩌면 바울이 교회의 분열을 말하며, 다시금 복음을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하고 이를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과 달리,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우월함을 내려 놓으신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누군가와 비교하여 ‘우월함’을 취하신 분이 아니라, 이미 존재로서 ‘우월’이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든 우월함을 증명하는 자리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이를 내려 놓으심으로 모두에게 무시를 받는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 어려워 보이고 굉장한 일이 일어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나와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모든 지위를 내려 놓으시면서까지 여러분과 저를 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러분과 저를 ‘우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우리’ 안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주목하는 것은 바보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도리어, 자신의 모든 우월함을 내려 놓으신 그분의 우월함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말하는 이유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그리스도를 주목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분은 도대체 어떠한 분이시길래, 우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당한) 주장을 내려 놓고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까?
이는 아무리 내가 맞고 옳다 하더라도, 우리가 더이상 그 옳은 것으로 상대를 죽이고 넘어뜨려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상대를 위해 넘어지고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자리까지 가는 게 복음이 우리에게 형성하는 ‘문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이 하루를 지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이 우리 마음 안에 ‘아름다움’으로 남아, 이 시대 정신이 아닌 그분의 아름다움을 선택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밝히 보게 하시고, 그분의 아름다움을 즐거워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