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25일
[본문말씀]
창세기 41장 38-40절
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묵상]
꿈, 뭣이 중헌디? ㅎㅎ.. 참고로 저는 서울 사람이기 때문에, 이게 어느 지역 사투리인지 잘 모릅니다. 이전에 보았던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며 제목을 적었습니다. 요셉의 꿈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살펴보자는 취지입니다.
창세기 41장은 요셉이 꾼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흔히들 이를 두고, 꿈을 꾼 요셉을 강조하고 ‘큰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정도로 본문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요셉이 꾼 꿈에 너무 힘을 주다보면, 살짝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삶은 -이미 우리는 경험했듯이- 꿈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정도로 축소시켜 해석할 수 없습니다. ‘꿈을 꾸어야, 너의 삶이 너가 꾼 꿈대로 잘 풀릴 것이다”와 같은 해석은 우리의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꾼 꿈의 지위와 역할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나타냅니다. 요셉에게 꿈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편에 얼마나 신실하신 하나님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통로였습니다. 때문에 요셉이 애굽에 오기 전과 애굽에 온 이후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꿈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꿈이 아닌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요셉은 형들을 만나, “내 꿈대로 되었지? 봐라! 내 말이 맞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을 이루셨다”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말합니다.
요셉에게 꿈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말해주는 통로였습니다. 본문을 통해 이해해야 할 ‘꿈’의 지위와 역할입니다.
혹자는 요셉의 꿈을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나도 한번 요셉처럼 꿈을 꿔봤으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서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그 꿈대로 되면 또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주신 꿈보다 더 확실하게, 그리고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꿈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완전하게 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꾼 요셉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야 옳습니다. “내가 꾼 꿈보다, 당신들이 보고 있는 예수가 더 부럽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꿈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 수 있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꿈 부러워 말고 오늘의 하루를 힘내어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꿈보다 더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과 은혜와 긍휼과 인자하심을 맛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