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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marina]

회개의 무게

[컴그아침묵상] 3월 13일 

[본문말씀]

에스라 10장 1-15절

  • 1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 2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 3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4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 5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 6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 7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 8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 9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 10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 11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 12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 13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 14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 15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에스라 10장은 회개의 무게에 대해 말해줍니다. 보통 우리는 회개를 하면 내 죄가 ‘면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회개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개봉한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한 여인이 겪은 어려움을 통해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가 그토록 가벼운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는 죄를 날려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말씀 앞에 선 이스라엘의 죄가 드러납니다. 그 죄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화에서는 이것이 그렇게까지 죄인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묵상글에서는 이를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시간이 될 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그들이 이 결혼을 취소하고, 심지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과의 관계까지도 정리하겠다고 한 데 있습니다. 그들의 회개는 절대로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회개는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회개를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회개는 자신들이 지은 죄를 직면해야 하는 무게를 지닌 회개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회개도 죄를 날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무게를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 죄의 무게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가 회개의 시작점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면 주인공인 신자의 처음 상태가 바로 이렇습니다. 그는 죄의 무게를 온 존재로 감당합니다. 때문에 회개란 죄의 무게를 직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죄의 무게를 직면해야 합니다. 그 죄의 무게를 직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신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까? 왜 무흠하신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던 것입니까? 바로 우리 죄의 무게가 그토록 심각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어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우리가 지닌 죄의 무게입니다. 우리 죄의 무게를 마주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절대로 그분의 사랑도 알 수 없습니다.

자녀가 철이 든다는 것은 자신이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이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지점은 자신이 얼마나 그 사랑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알게 될 때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도 먼저 우리가 지닌 죄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의 무거운 죄를 당신의 것으로 짊어지신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입니다. “아, 내가 받은 사랑이 이토록 큰 사랑이었구나. 내가 져야 할 죄의 무게를 그분이 대신 지실 정도로 나는 사랑받는 존재구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앞에서 회개의 문을 지난 사람은 정직하게 자신이 지은 죄를 마주합니다. 영화 <밀양>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나는 내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나는 자유합니다.”가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가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저지른 죄에 대해 나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나는 당신에게 큰 잘못을 했습니다. 내 평생에 당신에게 용서를 구해도 나는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자신을 비하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을 비하하며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죄를 회피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구하는 용서는 정직하게 자신이 지은 죄를 피하지 않으며, 그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정직하게 자신이 지은 죄를 직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자신에게는 아무런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 지은 죄를 직면하게 하고, 용서를 구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회개는 우리를 더욱 사람답게 합니다. 그리스도 앞에서의 회개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를 알게 되며,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부디 이러한 회개가 우리 안에 일어나 우리의 삶을 더욱 우리답게, 정직하게 직면하며 살아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회개는 죄를 가볍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의 무게를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이다.

  2.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볼 때 비로소 죄의 심각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알게 된다.

  3. 그리스도 앞에서의 회개는 우리를 더욱 정직하고 사람답게 살아가게 만든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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