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묵상]
세줄요약
바알 선지자들의 제단은 아무 반응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제단에 불을 내리셨다.
종교는 보통 인간의 헌신과 희생으로 신을 감동시키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감동시키신다.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우리의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감내하신 희생이며, 그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주 유명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 한 사람과의 싸움(?)입니다. 우스운 소리로 “17 대 1로 싸웠다”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싸움은 그 원조격입니다. 왜냐하면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곧 850명과 엘리야 한 사람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과연 이스라엘의 하나님인가? 라는 질문 앞에 북이스라엘의 모든 이와 엘리야가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을 향해 우리가 섬겨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보자라고 말합니다. 제단 위 제물에 불을 내리는 신이 우리가 섬겨야 할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흥미진진한 제안에 바알 선지자는 제단에 제물을 두고 자신들이 섬기는 바알에게 간절히 구합니다. 불을 내려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제단 위 제물에는 어떠한 미동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상해하며 바알에게 자신들의 진심을 보이고, 반응을 구합니다.
이러한 바알 선지자들의 모습은 종교의 일반을 보여줍니다. 종교의 일반은 나의 헌신, 나의 희생을 들어 신의 응답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정성과 노력을 보이면 하늘이 감동하고 이에 응답할 것이란 말입니다. 이 말에 반대할 이가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이에 반대합니다. 하늘을 감동시켜 받는 게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감동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감동시키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을 감동시킬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감동시키기로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희생을 드려 그분 앞에 간 게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 우리가 그 분 앞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바알의 제단과는 달리 하나님 앞에 드린 제단 위 제물에 하나님이 불을 내리십니다. 우리가 희생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느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떠한 희생을 감내하셨는가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희생한 값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값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희생과 열심을 가지고 증명받지 않으시고, 하나님 자신의 희생과 열심을 통해 우리를 증명하십니다. 우리로부터 증명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있습니다. 그 열심이 우리로 하여금 오늘도 열심을 따라 충성하게 합니다. 우리의 신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의 희생을 보이는 신앙이 아니라, 스스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시는 신앙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당신만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