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2월 13일
[본문말씀]
창세기 16장 1-6절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묵상]
인생이 뒤엉킨 것 같을 때. 우리의 삶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갈등’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갈등이 존재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하갈 간의 갈등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섯 절밖에 되지 않지만 이 짧은 구절 안에 서로와 서로가 갈등을 겪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사라 그리고 하갈 사이에 등장하는 갈등들을 보노라면, 우리네 인생을 함축해 놓은 것만 같습니다. 비겁하고, 치졸하며, 고집스럽고, 나약하며, 표독스러운 모습(이외에도 더 많습니다!)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대할 때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아니던가요?’,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 아니던가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아마 이 질문은 하갈이 던졌을 질문 같기도 합니다. 분명 하갈은 아브라함과 사라로부터 당한 대우에 대해 “그러고서도 늬들(?)이 신자냐?”라고 되물었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인생이 뒤엉킨 것 같은 때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관계의 갈등으로 인해 말이지요.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갈등으로 비롯된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오늘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전달하는 위로 하나가 있다면, 그렇게 뒤엉킨 것 같은 관계의 갈등 사이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풀 수 없는 매듭 사이로도 하나님은 우리 삶에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만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늘 이러한 우리 인생 한복판이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비겁하고, 치졸하며, 복수하기를 기뻐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내 이익을 챙기기 위한 시도들 사이로, 하나님은 일하시기를 멈추지 않으시며 자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일하시되, 끝까지 일하십니다. 그 비겁함 사이로, 그 치졸함 사이로, 그 완고함 사이로 말입니다.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뒤엉킨 인생의 실마리이며, 유일한 해답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베푸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뒤엉킨 인생의 유일한 실마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매듭이 풀린 삶, 그 자유를 누리는 삶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