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4월 13일
[본문말씀]
고린도후서 2장 5-8절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묵상]
오늘 본문은 바울과 고린도교회를 근심하게 한 자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근심하게 한 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침묵하고 있으나 학자 중 일부는 이 내용이 바울과 고린도교회 사이를 ‘이간질 하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이전에 ‘눈물로 쓴 편지’를 통해 고린도교회에게 ‘이렇게 근심하게 한 자가 잘못한 내용에 대해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 아니라, 정당한 책임을 지게 해야한다’고 질책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이 잘못에 대해 그간의 모호한 행동을 돌이켜 근심하게 한 자에게 권징을 합니다(6절).
바울과 교회 사이를 이간질 했다는 것을 알게된 교회는 일명 ‘근심하게 한 자’에게 권징을 넘어 분노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5절과 7절을 보면, 그 근심의 정도가 심했고 이로 인해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마땅히 받아야할 징계를 받았으니, 이제는 그를 근심에 잠궈둘 게 아니라 이제는 용서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만약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볼 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말한 권징의 목적은 단순히 근심하게 한 자가 괴씸했기 때문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회복까지도 염두에 두고 교회에 용서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징의 목적은 용서이고, 그 용서는 곧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권징은 공동체에 저지른 잘못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사실, 이렇게 바울이 자신과 교회를 갈라놓은 자를 향해 ‘용서’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의외입니다.
이전에 근심하게 한 자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오해했습니다. 여론은 바울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눈물로 쓴 편지로 인해 근심하게 한 자가 한 말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론은 금새 바울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세상에서 이 장면을 보면, 이제 바울은 그 여론을 가지고 근심하게 한 자를 심판하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권징을 넘어 이 잘못을 시인하고 돌아온 그를 향해 공동체가 용서할 것을 말합니다. 여론을 이용해 그 상대를 짓누르지 않는 것이 바로 용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용서란 나에게 아무리 타당한 명분이 있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온 이를 밀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볼 때, 그 잘못이 선명하면 할수록, 모든 여론이 나의 편이 될 정도로 확실하게 상대가 나에게 잘못했을 때 더욱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용서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도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을 이간질 했던 이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모든 여론이 바울에게도 돌아왔습니다. 근심하게 한 자를 내칠 수 있는 명분이 확실했습니다. 교회로부터 바울을 오해하게 만든 것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돌아온 그 근심하게 한 자를 형제로 받아 용서할 것을 말하는 게 오늘 본문에서의 바울의 모습입니다.
사실 이러한 바울의 용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어, 자신이 만드신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성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죽인 자들은 멸망을 받아도 됩니다. 이보다 더 적합한 멸망의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확실한 멸망의 명분을 제시한 그들을 향해 도리어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멸망의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우리를 누리지 않으신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용서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 ‘용서’란 주제는 굉장히 힘든 주제입니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그분께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명예와 명분보다 우리의 존재를 더 소중하게 여기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고,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우리가 인생을 용기내어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미워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 사람들이 있으십니까? 당장 용서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 삶의 방향성이 용서라는 것을 알아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신 그 사랑에 함께 동참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용서가 없는 이 세상 한복판에서 용서를 만들어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용서의 자유에 저도 함께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분노와 미움과 증오에 사로 잡히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주시고, 혹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한 값싼 용서가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직하게 그 과정들을 지난 무거운 용서, 값진 용서를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