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1월 16일
[본문말씀]
창세기 1장 26-28절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묵상]
세상을 해석하는 법. 사람은 해석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해석하는 존재라는 말은 “그냥”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존재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그 행동에는 해석이 담겨 있지요.
창세기는 세상을 해석하는 법을 말해주는 성경입니다(물론 모든 성경이 그렇습니다만..^^..). 흔히 창세기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찾고 이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논의들이 필요할 수는 있으나 창세기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논의들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는 ‘창조가 과학적이냐 아니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너희가 그동안 알고 있는 세상과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세상을 해석하는 법을 말해줍니다. 그중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두 가지를 말해줍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원인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으시다 말해줍니다. 그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의 완전한 하나됨 가운데 일어난 행위가 바로 창조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완전한 사랑의 연합이 창조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과 방불한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말해줍니다. 당시에 ‘신의 형상’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은 기득권을 가진 소수의 몇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누군가를 다스리는 명분과 권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러한 명분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명분을 깨고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자신과 방불한 한 인격과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통해 당시 출애굽 후의 이스라엘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 안에는 세상을 해석하는 법이 들어옵니다. 먼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등급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나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과 방불한 존재로 여기시고 존중하시는 이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으로는 사랑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곧 삼위 하나님으로서, 서로와 서로 간에 완전한 사랑 가운데 한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사랑은 그분 자신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사랑으로 존재하시기에 그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두 가지 세상을 해석하는 법이 우리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눈이 되길 바랍니다. 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누리며 더욱 당당하게 우리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의 연약함을 뚫고 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곧 창조이며,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되어 다행입니다. 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안에서 마음 껏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의 삶을 해석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