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묵상]
오늘 본문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을 소개합니다. 레위인의 첩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이 내용을 접할 때 우리의 첫 인상은 ‘총체적 난국 그 자체’입니다. 이스라엘의 본이 되어야 할 레위인에게 첩이 있다는 것도, 레위인과 첩이 나그네로 방문한 도시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영접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도, 한 노인의 약함을 무시하고 나그네를 겁탈하겠다고 찾아온 베냐민 사람 불량배들도 그리고 그 불량배들에게 가장 약한 첩을 내주었다는 것도. 과연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가능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세상도 계속해서 약자가 희생되기 때문입니다.
약자를 희생 제물로 드려 강자가 생존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반입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의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구절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와 같은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할 때, 과연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변함없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신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비극적인 세상에 궁극적인 희생양으로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을 자신의 몫으로 끌어 안으셨습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이 더이상 우리 삶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희극으로 완성하셨는데, 그게 바로 부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만 보면 우리는 두렵고 겁이 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새롭게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을 끌어 안으시면서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각자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꺼이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는 모든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어내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 안에서 우리의 하루를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용기가 생깁니다.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살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