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묵상]
요한계시록 19장은 큰 음녀의 심판 이후에 교회의 지위를 새롭게 묘사합니다. 큰 음녀 아래 교회는 피를 흘리고 핍박을 받아 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음녀가 심판을 받은 뒤 묘사되는 교회의 모습은 종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신부’로 묘사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결혼식에서나 ‘신부’는 주인공입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그날의 신부는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교회를 신부로 그린다면, 예수님은 ‘백마를 탄 왕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신부를 데리고 올 백마를 탄 왕자입니다. 어찌보면, 항상 동화책에 등장하는 공주를 데리러 온 백마 탄 왕자의 이야기와 흡사합니다. 아니, 오히려 동화책이 요한계시록을 보고 그 스토리를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백마 탄 왕자가 공주 앞에 나타나기를 꿈꿉니다. 물론 여성이 남성의 지위에 편입되는 게 불편하다 말하시는 분들은 ‘백마 탄 왕자가 뭐 그리 대수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히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이든지 여성이든지 우리 모두는 우리를 구원할 ‘백마를 탄 왕자’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백마를 탄 왕자, 예수님과 결혼한 공주 곧 신부입니다. 결혼은 상대의 장점과 약점을 서로의 것으로 여기는 관계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와 결혼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셨으며, 예수님의 모든 장점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여 우리의 모든 자존감은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결정 됩니다. 우리의 약점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시고, 자신의 모든 장점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신 그리스도 인해 말입니다!
우리를 위하신 백마를 탄 왕자되신 그리스도로가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행복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이 든든합니다. 늘 겸손함과 당당함을 가지고 우리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