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묵상]
‘부활’하면, 신자에게만 일어날 일 같지만, 부활은 불신자와 신자 모두에게 일어날 일입니다(요 5:29). 오늘 본문은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 후 심판에 대해 말해줍니다. 신자와 불신자 모두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결과는 서로 정반대입니다. 불신자는 둘째 사망 곧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고, 신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자기 행위대로’입니다. 신자에게 ‘자기 행위대로’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신해 받으신 ‘심판’에 근거합니다. 어쩌면 신자에게도 ‘자기 행위대로’라고 할 때 불신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신자에게 ‘자기 행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행위’가 자신의 행위를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 심판대에서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받으신 심판’입니다. 오직 은혜와 사랑만이 신자가 그 심판대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이 잘한 것이 있다며 아우성 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자신의 행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대 앞에 선 그 자신도 알 것입니다. 자기의 행위가 얼마나 지푸라기에 불과한 것인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지 불신자에게 겁을 주기 위한 본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자들을 격려하는 본문이 됩니다. “신자 곧 교회에게 심판은 완성이다” 라는 위로 말이지요. 어느 누군가는 심판을 두려운 것으로만 이해합니다. 맞습니다.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면 이는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행위를 덧입은 자들에게 심판은 완성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좋은 것을 완전히 덧입는 날이 바로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심판의 날을 기다리시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마땅히 심판의 날에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 행하신 그 일들로 인해 말이지요. 이러한 담대함을 가지고 오늘의 하루를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심판의 날이 두려운 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깨닫고 고백하며 찬양할 수 있는 날임을 믿습니다. 주님, 이땅에서 더욱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