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2월 13일
[본문말씀]
창세기 50장 19-21절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묵상]
“17살, 이복형제들로부터 노예상에게 팔렸습니다. 아무리 배가 다른 형제라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나에게 입힌 피해는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결심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형들에게 ‘복수’하기로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를 드라마에 나올 법한 복수극으로 꾸민 내용입니다. 위의 내용이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복수’가 일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한 손해, 피해를 상대에게 다시 갚아주는 것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도 그 속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안겨줍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복수’를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합니다. (물론 매번 그러한 주제가 흥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우리의 마음이 시원해질만한 복수로 자신이 입은 손해를 보상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러한 선택은 복수보다 더 나은 해방감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지난 날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복수는 지금부터”라는 불안함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불안해 하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형들이 나에게 입힌 손해가 나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뿐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복수’가 아닌, ‘용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악’이 요셉의 인생을 ‘악’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의 ‘선’만 있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순진하게 눈물 흘릴 일들일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요셉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입힌 상처가, 아픔이 요셉의 삶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의 용서는 여기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형들이 자신에게 입힌 상처와 손해가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면 요셉은 형들을 결단코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가 우리에게 입힌 그 손해가 우리의 삶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십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그 누군가가 결정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너의 삶은 내가 내 아들을 내어준 그 값으로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에 누군가가 입힌 그 손해가, 그 피해가 우리를 잡아 채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손해에게 말하십시오. “손해야, 나를 결정하는 건 너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입니다. 나에게 손해를 입힌 상대를 향한 분노의 감옥에서 나와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를 맛보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이 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당신이 저를 위해 이루신 선만이 저의 삶을 결정합니다. 그 선 안에서 악을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