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묵상]
사도 요한은 교회를 설명함에 있어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절을 보시면 먼저는 ‘택하심을 받은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조건을 넘어선 ‘은혜’이기 때문에 그분의 택하심은 그분과의 완전한 관계의 근거가 됩니다.
다음으로 ‘부녀’입니다. 부녀란, 결혼한 여인을 의미하는데, 곧 그리스도와 결혼한 여인들이 교회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여인 곧 신부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 됩니다.
사도 요한이 교회를 신부이자 그리스도를 교회의 신랑으로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혼은 서로가 서로의 지위에 묶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의 모든 좋은 것들이 곧 나의 것이 됩니다. 예를 들면, 재벌과 결혼을 하면 이전에는 재벌이 아니었던 사람은 재벌이 됩니다. 집이 없던 사람은 집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면 집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결혼을 하면 상대의 모든 좋은 것은 나의 것이 되는 게 결혼 안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와 반대로 결혼은 상대의 약함도 나의 것이 됩니다. 상대의 과거가 수치스러울 경우, 그의 과거는 나의 과거가 됩니다. 때문에 상대의 과거를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경우 파혼과 같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결혼을 한 교회는 예수님의 모든 좋은 것을 교회의 것으로 누립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어 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그 모든 것이 그분을 신랑으로 맞은 교회의 것이 됩니다. 또 동시에 교회의 모든 수치도 그분의 것이 됩니다. 이땅의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때문에 굉장히 많은 연약함을 갖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만 보아도 확연히 드러나지요.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를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시고, 이 관계를 깨지 않으시며 신부의 수치스러움을 신랑인 자신이 감내하십니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자신의 신부요, 부녀로 맞이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이렇게까지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맞이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무엇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어떠한 존재인지 기억해야 옳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위해 보인 그 사랑만이 교회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맞이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 사랑만을 우리의 전부로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