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9월 4일
[본문말씀]
열왕기하 8장 1-3절
- 1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 2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 3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수넴 여인이 다시 등장합니다. ‘수넴 여인’이라는 이름 그대로, 그녀는 수넴 출신의 여인이었습니다. 수넴은 예루살렘이 아닌 변방 지역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좋은 동네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즉, 수넴은 지역적 한계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동시에 ‘여인’이라는 신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여인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수넴 여인을 주목합니다. 왜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여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는 ‘세상을 움직일 힘이 있는 사람’을 주목합니다. 돈, 명예, 권력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목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성경은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주목합니다. 오늘 본문 속 수넴 여인이 그 증거입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엘리사를 통해 들은 말씀대로 블레셋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칠 년의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칠 년 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집도 땅도 모두 잃어버린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결과로 삶을 해석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결과가 나쁘면 의문을 품습니다. 수넴 여인의 경우도 블레셋으로 피신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모든 것을 잃었을 때는 “과연 이게 하나님의 뜻일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리는, ‘좋은 것’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 알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4살과 7살 된 두 아들이 있는데, 아이들은 매일 자신들에게 ‘좋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부모인 제가 볼 때 그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아직 무엇이 진짜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좋은 결과에 집착하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진짜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가’입니다. 기근 중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그것이 좋은 것이고, 기근이 없을 때도 좋은 이유는 기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성경은 그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사실이 바로 우리의 형통입니다. 이 형통은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형통한 자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결과’는 더 이상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한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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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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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넴 여인은 지역적·사회적 한계를 지녔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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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결과로 해석하면 혼란스러우나, 진정한 ‘좋음’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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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곧 형통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형통은 흔들리지 않는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과 함께함이 형통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